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바계 미국인 (문단 편집) == 역사 == [[쿠바]]와 [[미국]]은 매우 가까운 거리로 [[플로리다]] 키 웨스트에서 쿠바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다. 최단 거리는 부산- 규슈간 직선거리보다도 짧다. 그런 만큼 쿠바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미국 이민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쿠바계 미국인 공동체가 증가한 계기는 바로 [[쿠바 혁명]]이다. 쿠바는 순식간에 [[반미]], [[친소]] 국가가 되었으며 돈 많은 [[부르주아]]나 지주들은 공산정권이 두려워 가까운 나라인 미국으로 많이 도피하였다. 미국의 경제 제재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드러난 체제 모순으로 경제적, 정치적인 망명인들 또한 꾸준히 가까운 땅인 미국으로 유입되어 왔다. 이런 배경 탓에 이들은 쿠바의 공산 정권에 매우 적대적이며 쿠바 체제 반대 활동에 적극적이다. [[미국 중앙 정보국|CIA]]가 쿠바계 망명자들을 중심으로 병력을 조직하여 쿠바를 공격한 [[피그만 침공]]이 잘 알려져 있으며,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쿠바 공격을 포기한 이후에도 망명자 그룹은 독자적으로 쿠바에 침투하여 체제 전복 등 반정부 활동을 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했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미국-쿠바 관계|쿠바와 미국과의 관계]]가 풀리는 듯하다가도 매번 꼬이게 되는 단초를 많이 제공했다. 경비행기를 몰고 날아가서 쿠바 영공에서 격추되거나 심지어 쿠바의 관광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호텔을 폭파하거나 하기도 했다. 이런 극단적인 활동 이외에도 혁명 초기 망명한 이민자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국에서 시민권을 얻고 쿠바에 강경책을 유지하도록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부분도 무시 못한다. 이러던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쿠바의 경제위기 당시 빈곤 탈출을 목적으로 망명한 이민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나서였다. 당시 [[소련 붕괴]]의 여파로 인해 쿠바의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주로 젊은 계층이 보트로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대규모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쿠바계 망명자 그룹에서는 이때의 경제난을 빌미로 쿠바에 대한 재제강화를 압박해서 쿠바의 경제위기를 가중시킨 뒤 시민혁명 발생으로 쿠바 정부를 뒤엎으려고 했지만 [[피델 카스트로]]는 예상과 다르게[* 사실 1980년에 비슷한 수법으로 피델에게 불만을 가진 쿠바인들의 망명을 방조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범죄자들이나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들을 같이 떠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쿠바 감옥이 사람이 없어 텅텅 비었고 미국에서 한동안 골치를 앓았다나 뭐라나 하는 후문이었다.] 원하는 사람은 떠나도 좋다고 말하면서 알아서 탈출하게끔 내버려 두었고[* 그 덕택에 피델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대거 쿠바를 빠져나가는 바람에 쿠바 망명자 그룹이 병쪘다는 후문도 있다.] 덕분에 밀려드는 [[보트피플]]에 골머리를 앓던 미국 정부는 쿠바에 남아 있는 미국 땅 [[관타나모 만]]에 난민캠프를 세우고 마이애미에 애써 도착한 난민들을 다시 쿠바로 데리고 와서 일시적으로 수용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이때 미국으로 건너간 [[쿠바인]]들이 정착하면서 쿠바계 이민자 그룹의 강경한 분위기는 많이 희석되고 있는 중. 특히 이민자들의 가족들에로의 달러 송금이 쿠바 경제에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며 쿠바가 어느 정도 개혁개방 정책을 진행하면서 단순 송금뿐만 아니라 쿠바에서 자영업을 했을때 종잣돈으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또한 쿠바의 물가가 싸다 보니[* 단, 수입공산품의 경우에는 미국과 큰 차이는 없다.] 미국에서 몇년씩 일하면서 돈 벌다가 쿠바로 돌아와서 미국에서 번 돈을 종잣돈 삼아 부유층으로 잘사는 경우도 종종 있는 모양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